마리로라생은'진정제''잊힌여인" 기욤아폴리네르는 '미라보다리'시를 쓰게한 두 천재의 미친사랑과 남긴 예술은(+코코샤넬 초상화)
[아트온톡(ArtOnTalk) 미술관 계단 밑 작업실]
안녕하세요, 예술을 사랑하고 그 너머의 숨겨진 이야기를 탐닉하는 블로거 아트온톡입니다.
그동안 우리 블로그에서 테크와 경제, 자산 시장의 뜨거운 이야기들을 주로 다뤄왔다면, 주말의 차분한 저녁인 오늘만큼은 잠시 숨을 고르고 우리 블로그의 본령이자 마음의 고향인 '순수 예술과 문학'의 세계로 낭만적인 침잠을 떠나볼까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걸어볼 무대는 20세기 초, 전 세계의 천재 예술가들이 모여들어 매일 밤 예술과 낭만을 논했던 프랑스 파리의 몽마르트르입니다. 그곳에는 파블로 피카소의 화실이자 보헤미안의 성지였던 ‘바토 라부아르(Bateau-Lavoir·세탁선)’가 있었고, 그 먼지 자욱한 화실의 한가운데서 역사상 가장 뜨겁고도 잔인했던 두 천재의 ‘미친 사랑’이 피어났습니다.
바로 야수파와 입체파의 홍일점이자 세련된 파스텔톤의 화가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 그리고 근대 예술의 혁명가이자 초현실주의라는 단어를 탄생시킨 천재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의 이야기입니다.중간에서 서로를 연결한 화가는 피카소라고 합니다.
둘의 사랑은 불꽃처럼 타올라 파리의 밤을 밝혔으나, 그 끝은 가혹한 결별과 유배, 그리고 비극적인 죽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상처와 그리움은 인류 예술사에 영원히 박제될 불멸의 걸작들을 탄생시켰습니다. 마리 로랑생에게 독백 같은 시 '진정제(Le Calmant)'와 '잊힌 여인(La Forcée)'을 쓰게 하고, 기욤 아폴리네르에게 이별의 아픔을 노래한 불후의 명시 '미라보 다리(Le Pont Mirabeau)'를 짓게 한 두 사람의 미친 사랑과 그들이 흘린 눈물로 빚어낸 독보적인 예술 세계를 깊이 있는 에세이로 전해드립니다.
| 마리 로랑생 1950년 작 '모자 쓴 여자'. /미국 국립 여성예술가미술관 |
1. 세탁선(Bateau-Lavoir)에서 시작된 운명적 만남
1907년, 파리 몽마르트르의 허름한 공동 아틀리에인 세탁선은 젊고 가난한 예술가들의 열기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파블로 피카소가 그의 기념비적인 대작 <아비뇽의 처녀들>을 그리며 입체주의의 서막을 열고 있던 바로 그 시절, 피카소의 소개로 27세의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와 24세의 화가 마리 로랑생이 처음으로 마주하게 됩니다.
아폴리네르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난 사생아로, 늘 정체성의 혼란과 고독을 안고 살던 감성적인 천재였습니다. 반면 마리 로랑생 역시 프랑스 상류층 가문의 사생아로 태어나 어머니의 엄격한 그늘 밑에서 자라며 내면에 차가운 우울과 뜨거운 예술적 열망을 동시에 품은 전형적인 파리지앵 여성이었습니다.
사생아라는 같은 상처를 공유했던 두 사람은 첫눈에 서로가 영혼의 짝임을 직감했습니다. 아폴리네르는 로랑생의 우아하면서도 어딘가 기묘한 분위기에 완전히 매료되었고, 로랑생 역시 아폴리네르의 거침없는 언어와 천재적인 예술적 안목에 마음을 열었습니다. 두 사람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파리 예술계가 모두 주목하는 '가장 뜨겁고 격정적인 연인'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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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욤 아폴리네르는 피카키소에게 책으로 써서 예술활동을 알리는 중요하고 좋은 지성친구였다. |
2. 입체파의 홍일점, 머스크처럼 독창적인 '자기만의 해자'를 판 로랑생
당시 파리 화단은 피카소와 브라크를 중심으로 거칠고 기하학적인 남성 중심의 '입체주의(Cubism)'가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마리 로랑생 역시 그들과 어울리며 입체파 화가로 분류되었지만, 그녀는 남성 화가들의 거친 직선과 어두운 색채를 그대로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과감하게 자신만의 고유한 무기를 개발했습니다. 검은색을 배제하고 핑크, 회색, 청록색, 백색 등 부드러운 파스텔톤의 색채를 사용했으며, 기하학적 형태 대신 흐르는 듯한 유려한 곡선으로 여성의 부드러움과 몽환적인 세계를 그렸습니다.
이것은 비즈니스 세계에서 타인이 넘볼 수 없는 독점적 장벽을 구축하는 '경제적 해자'와도 같았습니다. 피카소조차 그녀의 화풍을 보며 "입체파의 독창적인 변주"라며 극찬했습니다. 아폴리네르는 그녀의 가장 열렬한 지지자이자 평론가로서 로랑생의 예술적 해자를 세상에 알리는 데 앞장섰습니다. 이 시기 두 사람은 서로에게 완벽한 뮤즈였으며, 사랑과 예술이 완벽하게 결합한 인생 최고의 황금기를 보냈습니다.
3. 모나리자 도난 사건과 잔인한 이별
그러나 천재들의 격정적인 사랑은 그 크기만큼이나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생채기 냈습니다. 아폴리네르의 지나친 집착과 불같은 성격, 그리고 로랑생의 자유분방함은 시간이 흐를수록 잦은 충돌을 빚었습니다. 그리고 1911년, 두 사람의 운명을 완전히 갈라놓은 사상 초유의 사건이 발생합니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명작 <모나리자>가 도난당하는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당시 파리 경찰은 예술가들의 전위적인 모임이 이 사건과 연루되었을 것이라 의심했고, 평소 과격한 발언을 일삼던 외지인 신분의 아폴리네르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해 체포했습니다. 일주일간의 구금 끝에 그는 무죄로 풀려났지만, 이 사건은 로랑생과 그녀의 어머니에게 엄청난 사회적 충격과 수치심을 안겨주었습니다.
가뜩이나 사생아라는 출신 성분 때문에 주변의 시선에 민감했던 로랑생의 어머니는 아폴리네르와의 만남을 격렬하게 반대했고, 로랑생 역시 피로감과 상처 속에서 결국 아폴리네르에게 이별을 고하게 됩니다. 5년간의 미친 사랑이 차가운 현실의 벽 앞에서 종말을 고한 순간이었습니다.
4. 아폴리네르의 눈물, 불멸의 시가 된 '미라보 다리'
로랑생에게 버림받은 아폴리네르의 슬픔은 처절했습니다. 그는 로랑생의 집을 향해 걷던 길목에 있던 센강의 미라보 다리에 홀로 서서 밤새도록 눈물을 흘리며 그녀를 그리워했습니다. 그렇게 흘린 천재 시인의 눈물은 인류 문학사상 가장 아름답고 슬픈 이별 시로 승화되었습니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은 흐르고 우리들의 사랑도 흘러간다 그러나 괴로움에 이어서 오는 기쁨을 나는 가슴속 깊이 기억하고 있나니
밤이 오고 종은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손에 손을 잡고 마주 서자 우리들의 팔이 만든 다리 아래로 영원한 시선으로 지친 물결들이 흘러가는 동안
밤이 오고 종은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흐르는 센강 물은 다시 돌아오지 않듯, 가버린 마리 로랑생과의 사랑도 절대 되돌릴 수 없음을 깨달은 시인의 절망이 고스란히 담긴 시입니다. 아폴리네르는 세월은 흘러가도 자신은 이 이별의 자리에서 영원히 숨 쉬며 그녀를 그리워하겠다는 슬픈 맹세를 남겼습니다. 이 시는 조르주 브라상 등 수많은 가수의 노래로 번안되며 오늘날까지 전 세계인의 가슴을 적시고 있습니다.
5. 로랑생의 응답: 독백 같은 시 '진정제'와 '잊힌 여인'
아폴리네르가 미라보 다리 위에서 절규할 때, 마리 로랑생 역시 고통의 터널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이별 후 독일인 백작과 충동적으로 결혼했으나, 곧이어 터진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프랑스를 떠나 스페인 등지로 망명 생활을 떠나야 했습니다. 조국으로부터 버림받고,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진 채 낯선 이국땅에서 외로움에 떨던 그녀는 자신의 공허한 내면을 시와 그림으로 쏟아냈습니다.
그녀가 남긴 대표적인 시 '진정제(Le Calmant)'는 이별 후 느낀 인간의 가장 깊은 고독을 서늘한 언어로 표현한 걸작입니다.
기다리는 것보다 더 지루한 것은 없다 죽는 것보다 더 슬픈 것은 없다 버림받은 것보다 더 불행한 것은 없다
질병보다 더 아픈 것은 없다 망설이는 것보다 더 잔인한 것은 없다 나의 과거보다 더 차가운 것은 없다
슬픈 여인보다 더 잊혀진 여인은 없다
그녀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질병보다 아프며, 과거보다 차가운 상태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시 '잊힌 여인(La Forcée)'을 통해 아폴리네르가 붙여준 '입체파의 뮤즈'라는 화려한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홀로 남겨진 외로운 한 인간으로서의 숙명을 담담히 받아들입니다. 그녀의 시는 아폴리네르의 '미라보 다리'에 대한 슬픈 메아리이자, 평생을 두고 이어질 그리움의 고백이었습니다.
6. 비극적 종말과 남겨진 예술
시간은 잔인하게 흘렀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자원입대했던 기욤 아폴리네르는 머리에 파편을 맞는 중상을 입고 겨우 살아 돌아왔으나, 1918년 전 세계를 휩쓴 스페인 독감에 감염되어 38세라는 젊은 나이에 허무하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죽기 직전까지 애타게 불렀던 이름은 다름 아닌 '마리'였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파리로 돌아와 아폴리네르의 사망 소식을 들은 마리 로랑생은 커다란 정신적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백작과 이혼한 뒤, 평생을 독신으로 살며 오직 그림에만 몰두했습니다. 그녀의 후기 그림들은 초기보다 더욱 몽환적이고, 더욱 화려한 핑크와 회색으로 가득 찼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녀의 그림이 화사하다고 말했지만, 평론가들은 그것이 '아폴리네르를 잃은 슬픔을 감추기 위해 칠한 가장 짙은 화장'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나이가 들어 백발이 되어서도 아틀리에 한편에 기욤 아폴리네르가 써준 시집과 그의 초상화를 늘 간직했습니다. 그리고 1956년, 73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기 직전, 그녀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내가 죽거든 백색 드레스를 입히고, 나의 왼손에는 장미 한 송이를, 그리고 가슴 위에는 기욤 아폴리네르가 나에게 보냈던 연서(사랑의 편지)들을 올려놓고 묻어다오."
그녀의 유언은 그대로 지켜졌고, 마리 로랑생은 평생을 그리워했던 첫사랑 아폴리네르의 편지를 품에 안은 채 파리의 페르 라셰즈 묘지에 잠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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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이야기,32년전 나의 예술의 지경을 넓혀준 이태리출판 책 |
7. 아트온톡의 총평: 예술은 상처를 먹고 자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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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카소와 함께 한사람들-우측 끝에 기욤 아폴리네르가 있다. |
오늘 함께 나눈 마리 로랑생과 기욤 아폴리네르의 미친 사랑 이야기는 우리에게 가슴 먹먹한 울림을 줍니다. 주식 시장의 변동성에 스트레스를 받거나 자산의 숫자에 마음이 갇힐 때, 우리는 가끔 이처럼 영원을 노래한 예술가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영혼의 환기를 경험해야 합니다.
비록 두 사람의 현실 속 사랑은 '모나리자 도난 사건'과 '전쟁'이라는 시대의 파도 앞에 무참히 깨어졌지만, 그들이 서로에게 남긴 깊은 상처는 '미라보 다리'라는 인류 불멸의 문학을 낳았고, '진정제'와 같은 고고한 시, 그리고 마리 로랑생만의 독보적인 파스텔톤 회화 세계(예술적 해자)를 완성하는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과 투자 역시 때로는 예기치 못한 시장의 폭락이나 현실의 벽 앞에서 상처받고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시련의 시간을 차분히 견뎌내고 자신만의 가치에 집중할 때, 먼 훗날 돌이켜보면 그것이 우리의 인생을 가장 아름답게 빚어낸 결정적 모멘텀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 마리로라생이 전설적인 디자이너 코코샤넬을 그린'마드모아젤 샤넬의 초상'(1923).다만 샤넬이 인수를 거부해 평생 화가가 보관했고,사후 미술관에 기증됐다. |
주말 저녁, 아폴리네르의 시 한 구절을 음미하며 지친 마음을 위로받으시길 바랍니다. 오늘 아트온톡의 인문학 산책이 이웃 여러분의 마음에 따뜻한 진정제가 되었기를 바랍니다.저는 마리로라생의 그림을 보며 희망을 품고 슬픔을 잠재우며 오늘을 살고 있는데요.그녀의 초상화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화롭 고 행복해집니다. 그녀의 그림을 직접 그려보며 더욱 그시대의 독보적인 아티스트로의 자리를 읽게 되어서 그림그리기 용기가 납니다. 1차세계대전 전쟁을 겪으며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지고 독일에서 급한 결혼이 다시 헤어지는 아픔으로 남고 전쟁터에 자원했던 기욤아폴리네르는 세상을 떠나게 되었죠. 그러나 그녀는 다시 프랑스로 돌아와 재기에 성공하여 빛을 발하며 아티스트로 꿈을 이루고 완성하여가는 인생후반이 또한 드라마틱합니다.
이야기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트온톡 블로그 이웃 추가와 공감, 그리고 따뜻한 댓글 부탁드립니다. 다음 시간에는 다시 우리의 자산을 든든하게 불려줄 명품 경제·테크 분석으로 돌아오겠습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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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20세기 초 프랑스 파리 아방가르드 예술사 기록 및 시인들의 문학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된 아트온톡 블로그의 문화예술 에세이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