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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폭 속 굴비를 든 남자”…천경자가 숨긴 1964년 작품의 비밀은? 수상한 진실

🎨 “화폭 속 굴비를 든 남자”…천경자가 숨긴 1964년 작품의 비밀은? 수상한 진실

천경자, 석양머리, 1964년, 종이에 채색, 150×120 cm, 금성문화재단 소장. '굴비를 든 남자'로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 서울특별시 출처 : 컬처램프(https://www.culturelamp.kr)


그림 속 남자가 들고 있는 건 굴비가 아니었다.
그림의 이름조차, 우리가 알고 있던 그것이 아니었다.

 

'굴비를 든 남자'전시회에서 촬영


서울미술관 석파정에서 열리고 있는 《천경자 작고 10주기 특별기획전: 내 슬픈 전설의 101페이지》.
그곳 한켠에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그림이 있다.
이름하여 ‘굴비를 든 남자’.
그러나 이 널리 알려진 제목은, 사실 천경자가 붙인 이름이 아니다.



🖌️ 작가가 붙인 진짜 이름은 ‘석양머리’

1964년. 천경자가 남긴 이 작품은 당시 아무에게도 깊이 읽히지 못했다.
그러다 1998년 <다시 찾은 근대미술> 전시에 처음 공개되며, 사람들은 이 그림을 ‘굴비를 든 남자’라 불렀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그림 속 인물의 손에 들린 생선을 근거로 후대에 임의로 붙여진 이름이었다.

작가 본인이 직접 붙인 이름은 ‘석양(夕陽)머리’.
1965년 11월 여성지 『주부생활』에 천경자 스스로 밝힌 작품 해설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금붕어/연도미

🎣 들고 있는 것은 '굴비'가 아니라 '간고등어'

그림 속 남자는 두 마리 생선을 들고 뽐내듯 걸어간다.
천경자는 그를 이렇게 묘사했다.

“풀살이 센 삼배옷의 사나이가 고등어 두 마리를 사들고 뽐내며 걸어간다.
그는 막걸리에 거나하게 취했다.”

그 생선은 굴비가 아닌, 노랗게 찌든 간고등어였다.
한국에서 굴비는 열 마리를 한 줄로 묶는 ‘두름’ 단위가 보통이지만, 그림에는 단지 두 마리뿐.
작가는 굴비가 아니라 고등어를 의도했고, 여름날의 시골 장터를 떠올리게 하는 풍경을 그려낸 것이다.


"주부생활" 1965년 11월호에 실린 천경자의 '석양머리' 전문 



🌅 ‘석양머리’가 그려낸 한 시절의 귀로(歸路)

그림 속 남자는 삼베옷을 입고, 막걸리에 취한 채 발걸음을 옮긴다.
배경엔 푸른 나팔꽃, 하늘엔 젖혀진 구름노을.
이 그림의 분위기는 지극히 서정적이며, 향수적이다.

그는 아마도 가족을 위해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이었을 것이다.
생선을 한 손에 들고, 발걸음엔 흥이 섞였고, 마음에는 가족을 향한 애틋함이 담겨 있다.

천경자는 이 풍경을 ‘귀로’(歸路)라 불렀고, 그 남자의 뒷모습엔 사라져가는 농촌의 삶과 따뜻한 서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천경자, 초혼(招魂), 1965년, 종이에 채색, 153×125 cm, 서울시립미술관 소장(작가 기증,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이 작품은 1965년 개인전에 "광무(狂舞)"라는 제목으로 출품되었으나, 이후 화면 상단 꽃무리를 지운 뒤 제목을 "초혼(招魂)"으로 바꾸었다.  ⓒ 서울특별시


🎨 화풍의 변화, 석채의 실험

천경자는 1960년대에 접어들며 화풍에 큰 변화를 맞는다.
이 작품은 동양화 전통의 부드러운 모필뿐 아니라, 서양화의 거친 붓 자국과 두터운 마티에르를 함께 담고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건 석채.
광석을 곱게 빻아 만든 이 색채는 당대에 매우 비쌌고, 천경자는 이를 아낌없이 사용했다.
덕분에 반세기가 넘는 세월이 지나도 그림은 풍성한 색채와 질감을 유지한다.


"주부생활" 1966년 3월호에 실린 천경자의 이토화랑 개인전 사진. 여기서 "석양머리"의 수정 전 모습을 볼 수 있다.  



🧳 도쿄에서 빛난 ‘석양머리’, 그리고 지워진 여인

1965년, 이 그림은 일본 도쿄 이토화랑에서 열린 천경자의 개인전에 출품되었다.
그런데 당시 촬영된 사진을 보면, 지금은 사라진 한 여인의 모습도 함께 담겨 있었다.
전시 후 작가는 그림을 수정하며, 여인을 지워버렸다.

천경자는 한 번 발표한 작품이라도 전시 이후 다시 손을 보는 예술가였다.
서울시립미술관에 소장된 <초혼>도, 발표 당시와 지금의 모습이 다르다.
그녀는 작품을 위해, 숟가락으로 석채를 긁어냈다.


가족

🕊️ 이제는 ‘석양머리’로 불려야 할 시간

세월이 흐르며 ‘굴비를 든 남자’로 불려온 이 작품.
하지만 작가의 손으로 쓰여진 해설이 있고, 작품의 원래 이름이 있다면,
이제는 진짜 이름을 불러줘야 하지 않을까.

<석양머리>는 단지 한 남자의 걸음이 아니다.
그 안엔 시대가 있고, 계절이 있고, 가족이 있고, 천경자가 꿈꿨던 삶의 이야기가 있다.



📌 전시 정보
《천경자 작고 10주기 특별기획전: 내 슬픈 전설의 101페이지》
📍 장소: 석파정 서울미술관
🗓️ 기간: 2024년 ~ 2025년 상반기 중 (※ 현장 확인 요망)

천경자 전시 브로셔,내 슬픈 전설의 101페이지

👣 전시 방문 후기 – 조용한 감정의 파도 속으로

천경자 전시 브로셔,내 슬픈 전설의 101페이지


석파정 서울미술관을 찾은 날, 겨울 햇살은 유난히 맑고 투명했다.
한 걸음씩 고요한 전시실 안으로 들어서자, 공간은 시간이 멈춘 듯 조용했다.
그 속에서 만난 ‘굴비를 든 남자’… 아니, 이제는 ‘석양머리’.가 친근히 맞아주었다. 

붓질의 질감, 빛이 닿은 색채, 그리고 남자의 눈빛이 전하는 메시지가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을 넘어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리는 순간이었다.

그림 앞에 잠시 서 있었을 뿐인데, 어느새 마음 한켠이 뜨거워졌다.
아버지의 뒷모습 같기도 하고, 오래전 골목에서 본 이웃의 모습 같기도 했던 그 남자.
그가 들고 있는 것은 단지 고등어가 아니라, 그 시절을 살아낸 누군가의 뜨겁고 위대한 나날들이였다.

  Jaqueline JEON art coaching : 추모의 공간에 그녀의 일기장을 보게 되었다. 시대의 고달픔 속에서도 그녀를 살게 해 준 에너지원이 세 개가 있었다. 꿈과 사랑 그리고 모정이었다. 나의 어머니도 생각이 나서 울컥, 나의 두 아들을 키워가던 젊은 날의 나의 초상도 겹쳐졌다. 개인전마다 장사진으로 위대한 귀환을 했던 작품을 시대를 초월하여 다시 볼 수 있어서 감사했다. 사회에 저작권과 작품을 환원한 최초의 화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여 그린 그림 등 세계를 누비며 자신을 해방해간 그녀였다.천경자작가의  존재감을 오롯이 확인하였다. 서로의  영혼이 시공간을  초월, 만나 축배를 함께 든 기분으로 서울 시립미술관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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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자 작가의 작품이 실린 브로그를 더 추천해드리겠습니다.   

“꽃과 여인의 화가” 천경자, 다시 만나다 🌸 서울미술관 10주기 특별전 — 《내 슬픈 전설의 101페이지》 리뷰(+2024년 9월 24일 ~ 2025년 1월 25일)

https://www.artontok.kr/2025/09/10-101-2024-9-24-2025-1-25.html

[1편] 저작권을 사회에 환원한 최초의 화가 – 천경자의 위대한 결심(+25년9월27일서울미술관 관람후기)


천경자 전시 리뷰 2편
✨ 천경자의 회고, 딸과 고양이, 붓끝에서 태어난 '아름답고도 슬픈' 여성의 초상이 된 이유
(+ 천상의 천경자 작가에게 쓴 나의 편지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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